[포레스트 스토리]영래와 나무(9)
[포레스트 스토리]영래와 나무(9)
  • 유진선 실장
  • 승인 2020.05.31 09:1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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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선 힐링플레이 실장

본지는 주식회사 힐링플레이(대표 유혜선)와 함께 전문가 에세이 연재에 들어간다. 힐링플레이는 숲해설과 유아숲교육, 산림치유 등 산림전문가들로 구성된 사회적 기업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소외받는 이들에게 숲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고 체험해주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다. 이들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생생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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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의 일이다.

사람들이 물러가고 어둠이 내린 숲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한 마음에 몇몇이 모여 깜깜한 숲을 찾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숲은 말 그대로 검정 봉지 속 같다. 훤히 보이던 그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발끝이 아득한데 영래 홀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천천히 가”

까르르 웃으며 개구리를 잡으러 가는 영래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이지만,

혹여나 다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자꾸 영래를 부르고 만다.

개굴개굴 우는 건 청개구리고 우~ 우~하고 우는 건 무당개구리야

서당 개 삼 년에 우리 영래도 숲해설가가 다 됐다. 정말 숲이 아이를 잘도 키워줬다.

영래를 숲으로 인도한 건 나무였다. 유치원에 있는 은행나무, 목련나무, 단풍나무들이 영래와 어울려 놀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숲으로 이끌었다. 공간 개념으로만 따지자면 저 큰 산의 나무를 어찌 다 만나겠냐 하겠지만, 움직이지 않는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서 영래와 만났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영래가 엄마와 함께 야간에 숲길을 걷고 있다.
영래가 엄마와 함께 야간에 숲길을 걷고 있다.

계절의 온도를 고스란히 전하면서 나무도 영래와 함께 자랐다.

낙엽송은 가끔 솔방울도 툭툭 던져주며 친구가 되자고 먼저 말을 걸기까지 했다.

숲이 가진 힘은 친구가 친구를 소개해주는 피라미드 구조에 있다.

은행나무는 목련나무에게, 목련나무는 단풍나무에게, 단풍나무는 참나무에게, 참나무는 벚나무에게, 벚나무는 미루나무에게 영래를 토스하더니, 급기야 웅덩이에 있는 개구리를 소개해주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늘 다니던 길에 있는 나무는 단박에 알아채고는 나에게 상세히 설명해준다.

엄마 이건 벚나무야. 몸통을 만져보면 알아. 이렇게 점이 길게 짧게 여러 개가 있어

엄마 이건 참나무야. 피부가 울퉁불퉁해

울퉁불퉁한 게 참나무 하나만 있는 게 아니겠지만 그 자리에 있는 나무는 분명 참나무가 맞다. 친구는 친구를 기억하는 법이니, 똑똑한 영래가 헛갈릴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엄마 오늘은 참개구리 할아버지 만나서 기분 좋다. 그치? 내가 잡을 수 있었는데 이모가 잡았어.

바람이 불자 나무들이 조용히 박수를 쳐준다. 깜깜해서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영래와 함께 오는 숲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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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 2020-06-12 13:38:04
엄마와 딸
그림 같습니다.
어둠이 숲을 지웠더라도 숲의 얘기가 들려요.
자려고 불끄고 누웠는데 자꾸 웃음이 나오는 것처럼... 마음이 환해요.

소래맘 2020-06-11 21:54:56
어둡지만 엄마와 숲을이해하는 뒷모습도 귀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