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키우는 남자 김남수 수림농원조경 대표
나무 키우는 남자 김남수 수림농원조경 대표
  • 박영남 기자
  • 승인 2019.02.15 2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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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플러스=박영남 기자] 어렸을 적 문학에 심취했던 사람이라면 프랑스 소설가 장 지오노가 집필한 ‘나무를 심은 사람’을 한번쯤 읽어봤을 법하다. 소설 속 주인공인 엘제아르 부피에는 프랑스 남부의 황폐한 고산지대를 자신의 이익이나 손해를 셈하지 않고 묵묵히 도토리 나무로 채워나간다. 자신의 가치실현을 나무 심는 일로 대신했던 주인공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처럼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도 수많은 나무지기들이 있다. 수림농원조경을 운영하고 있는 김남수 대표(60)는 산림조합중앙회에서 퇴직하고 10년째 나무 심는 일을 하고 있다. 자연이 좋아 산으로 돌아왔다는 김 대표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무를 심겠다"며 그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젊은이의 꿈 은퇴 후 이루다

김남수 대표가 운영하는 수림농원조경에 들어서자 청량한 푸른빛을 자랑하는 소나무들이 펼쳐졌다. 둥그스름한 반송에서부터 노란빛을 띠는 소나무까지, 김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농원 풍경은 겨울을 무색케 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대비되는 두 풍경이 마치 다른 계절의 풍경화를 뚝 잘라 이어 붙인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젊은 시절부터 꿈꿔왔어요. 저만의 나무농장을 꾸며보고 싶었죠. 그래서 정년을 10년 앞당겨 2005년에 퇴직했어요. 지금은 이렇게 나무 심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산림조합중앙회에 입사해 20여년간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막상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을 해보니 시작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론과 실전은 천지차이'라며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직장에 있을 때는 온실 속의 화초였어요. 나오면 다 될 줄 알았죠. 조합에서 나와 현실을 마주하니 제가 경쟁하는 사람들은 잡초 같았어요. 그들이야 말로 산전수전 다 겪었더라구요."

김 대표는 퇴직 후 6개월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6년부터 나무시장에 발을 들였다. 서울 양재동 묘목시장에서 묘목 판매를 시작으로 조금씩 생활비를 충당해 나갔다. 조합에 근무했을 때 임업기술지도사로 일했던 경험이 그나마 도움이 됐다.

"당시 묘목을 판매하던 게 시기가 잘 맞아 떨어지면서 수요가 있었어요. 이때부터 재미를 붙여 뚝심을 갖고 일을 하다 보니 주위에서 조금씩 알아주더라구요. 집짓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부탁하면서 나무를 심어주고 조경도 해주면서 지금까지 왔네요"

잘나가는 농원의 대표가 된 그는 지금 현재 조경수 2만5000평, 밤나무 3만평을 운영하고 있다.

"나무를 심고 가꾼지 10년이 됐지만 여전히 이 일은 고돼요. 그래도 자연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귀촌인들에게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그도 귀촌인인 만큼 자연으로 돌아와 조경을 시작하는 퇴직자들에게 할 말이 많다. 그가 겪은 시행착오를 후배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시행착오는 물론이거니와 퇴직자들 중에는 사기를 당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보통 사람이 퇴직을 하고 나오면 1~2억 정도 퇴직금이 생기잖아요. 당장은 하고 싶은 일이 많아 무턱대고 사업을 벌이곤 하는데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조경을 잘 모르는 사람이 오면 여기저기서 유혹이 많아 퇴직금 날리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그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데는 조경수 사업에는 보이지 않는 꿍꿍이가 많아서다. 어떤 묘목 판매사에서는 처음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심어만 놓으면 나무를 팔아주겠다며 좁은 땅에 많은 묘목구입을 권하기도 한다.

"나무를 심는 데는 일정한 식재거리가 필요한데 무턱대고 많이 심기만 하면 좋은 품질의 나무를 키울 수가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말이지만 일단 심어보고 잘만 키우면 팔아준다는 달콤한 말에 속는 경우가 많아요. 식재거리가 짧으면 일단은 좋은 상품가치가 있는 나무를 절대 생산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또 산을 임대하는 경우에도 잘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산주의 나이를 고려해 자손에게 물려줄 경우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조경수 사업의 경우 길게는 10년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

"산을 임대할 때는 산주의 나이는 물론 재개발 가능성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덜컥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면 그동안 키워온 나무를 다 베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지방자치단체마다 법 적용을 달리하므로 시설물 제한 같은 규제도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김 대표가 사전준비와 경험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는 귀촌인 뿐만 아니라 모든 퇴직자들에게 '여유를 갖고 천천히 사전준비를 하라'는 말을 꼭 남기고 싶다고 전했다.
 

조경수부터 밤나무 수확까지

그는 조경수 사업뿐만 아니라 밤나무도 키우고 있다. 나무가 거래가 활발한 시기는 굳은 토양이 물러지는 3월초부터 5월말. 밤의 수확시기는 9월초부터 10월, 한창 바빠지는 시기가 맞물리지 않는 시점을 이용한 노림수다. 그는 그가 운영하고 있는 농원 옆 한켠에 자체 저온저장고 시설까지 갖추며 품질 좋은 여주밤을 생산하고 있다.

그가 생산한 굵고 때깔 좋은 밤들은 맛까지 좋아 주위에서 먼저 찾는다. 서울 근교에 위치한 것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특별히 판로를 개척하지 않아도 탄탄한 입소문으로 타고 수확만 하면 금세 동이 난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저온저장고에 선별하고 남은 밤 한 자루를 풀며 미소를 머금은 그의 표정에서 풍년을 맞은 농민의 얼굴이 보였다.

"맛 한번 봐요. 다 팔고 이거 남았는데 알이 굵고 먹음직스러워요. 명절에 사과와 배를 많이 선물하는데 밤을 선물하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그가 한차례 밤 자랑을 늘어놓으며 손수 제작한 포장재도 내어놓았다. 디자인까지 직접 제작한 포장지에서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보였다. 설이 되면 직접 주문해보겠다는 기자의 말에 호탕하게 웃는다.

"자연에서는 정말 버릴 게 없어요. 일은 고돼도 이 맛에 나무를 키우는 거 아니겠습니까."
 

조경사업, 고품질 소형화 시대 성큼

농원에서 5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김 대표가 가꾸고 있는 산이 있다. 산자락 초입에 일정하게 정렬된 왕벚나무들이 꼿꼿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이렇게 주간거리가 일정하게 식재를 해야 됩니다. 제때에 가지치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구요. 겨울에도 할 일이 많아요. 거름도 주고 지속적인 관리를 해야 본격적인 출하시기에 빛을 볼 수 있습니다.”

벚나무 너머로는 흉고(사람 가슴까지 높이)의 아담한 소나무들이 자태를 뽐냈다. 김 대표가 국내 조경시장은 고품질 소형화로 가야한다며 허리춤까지 오는 소나무 300분을 소개했다. 요즘은 건물 옥상 조경이 인기를 끌고 있고 가정 내 소나무 분재도 규모는 작지만 서서히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조경사업의 미래는 여기 있습니다. 우리나라 조경 트렌드도 일본처럼 바뀌어 가고 있어요. 특히 우리의 경우 땅덩어리도 작고 대규모 개발사업과 같은 호재가 거의 없어 조경시장은 소형 분재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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