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농업의 검은 역사 시장개방] FTA 시대 도래와 국내 농업
[기획2-농업의 검은 역사 시장개방] FTA 시대 도래와 국내 농업
  • 박영남 기자
  • 승인 2018.09.1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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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회 앞에서 축산관련단체가 FTA 폐기를 주장하는 모습.
지난해 국회 앞에서 축산관련단체가 FTA 폐기를 주장하는 모습.

FTA 시대의 출범

WTO 출범 후 농업 선진국들과 개도국들은 심한 부침을 겪게 됐다. 큰 틀에서 합의된 다자간 협상은 UR협상을 계기로 각국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농업뿐만 아니라 전 영역으로 확장된 협상은 논의 자체가 쉽지 않았고 수많은 회의를 거치고도 좀처럼 이견을 좁힐 수가 없었다. 각 국의 정치적인 상황,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농민들의 시위, 개도국 중심의 협상 반대 움직임, 시민단체 중심의 반대 여론 확산 등 다자간 협의는 지루한 마라톤을 방불케 하면서 무역주도국들은 다자주의 원칙에 입각해서는 원하는 바의 시장을 형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미국과 유럽은 UR협상을 관철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의 농산물 개방폭을 달성하지 못하자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을 통해 다시 무역장벽을 낮추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다만 DDA는 150여개국 모두가 동의해야 타결이 되는 만큼 지루한 협상이 반복되고 결렬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이들은 지역간 ·양자간 자유무역 및 투자협정에 열을 올리게 된다. 이른바 FTA(Free Trade Agreement)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FTA는 WTO의 최혜국대우 및 다자주의 원칙에서 벗어남에도 불구하고 WTO 협정상의 1994 GATT 제 24조의 해석에 관한 양해 등을 근거삼아 광범위하게 추진되기에 이른다.

FAT 시작, 한칠레 FTA

한국정부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발 빠르게 FTA를 추진한다. FTA가 정부의 개혁개방 의지를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으며 해외 투자가들의 신뢰확보를 통해 투자유치를 지속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교역기회의 창출과 투자확대에 기대를 가진 정부는 첫 FTA 상대를 칠레로 선정하고 2002년 10월 25일 타결에 이른다.

2004년 4월 1일 발효된 양국간 FTA는 협상 타결까지 6차례의 공식협상을 통해 진행됐다. 농업분야 협상은 일단 쌀과 사과, 배는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하고 고율관세 품목인 마늘, 양파, 고추, 분유, 오렌지를 포함한 373개 품목에 대한 관세철폐는 DDA 협상이 종료된 이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피해 규모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됐던 포도는 계절관세를 부과하는 것으로 협의했고 국내 성출하기인 5월부터 10월까지는 WTO 관세 양허 계획에 따르며 나머지 기간에는 10년 동안 45%의 관세를 균등하게 철폐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역대 최대 빗장푼 한미 FTA

역대 FTA 중 농산물 최대 개방이라 불리는 한·미 FTA는 UR협상 이후 칠레 FTA 때와 같이 정부가 국민들에게 무차별 융단폭격을 맞은 협상으로 기록된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이거니와 협상 초기부터 졸속으로 추진된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아서다. UR 협상 때와 마찬가지로 쌀은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1531개 품목의 40% 가까운 575개 품목의 관세가 즉시 철폐됐다. 정부는 그나마 민감 품목 장기간의 관세철폐, 계절관세 적용,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도입 등을 통해 충격을 줄였다고 안도했다.

쇠고기는 당시 40%인 관세율을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폐하는데 협의했지만 그나마 세이프가드를 안정장치로 걸어뒀고 돼지고기 냉장육은 10년, 냉동육 7년, 달걀은 11~15년으로 관세철폐에 합의하면서 축산 농가들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오렌지는 9~2월 절반의 관세를 유지하고 이외의 시기에는 계절관세 30%를 7년 동안 적용한 뒤 없애기로 했다. 저율할당관세(TRQ)물량은 연간 2500톤을 부여했고 콩, 감자, 분유, 꿀은 소량의 TRQ물량으로 내줬지만 나머지 물량에 대해서는 현행 관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받았다.

 

보수적인 협상 한중 FTA

중국과의 FTA는 상당히 보수적으로 타결됐다. 정부가 공개한 협상 내용은 우리나라 재배면적이 많은 품목이나 품목별 단체가 활성화 된 품목 등은 대부분 양허 대상에서 제외됐다. 쌀과 주요 축산물은 물론 고추, 양파, 마늘과 같은 양념채소와 무와 배추 등 김치의 주재료, 과실류는 모두 양허 제외되면서 국내 농업에 큰 피해는 주지 않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다만 대두, 참깨, 팥 등 일부 밭작물과 혼합 조미료 및 기타 소스(일명 다대기), 각종 식용유를 포함한 기초 가공식품 등은 저율 관세로 수입하거나 관세를 철폐하기로 합의했다. 중국과의 FTA는 협상 초기만 하더라도 농업의 경우 높은 가격경쟁력과 지리적 위치 등을 감안할 때 농업의 생존 자체가 붕괴될 것이라 우려했지만 축산을 포함한 대부분의 품목이 우리의 입장이 관철되면서 우려를 씻어냈다.

다만 가공식품의 국내 식품회사가 중국 현지에서 농산물을 가공해 들여올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고 현재의 관세에서도 중국산 농산물은 여전히 식품공장이나 외식업체들이 선호하고 있어 한중 FTA 영향이 아니더라도 중국의 농산물 시장은 여전히 우리 식탁을 위협하고 있다.


농업의 티핑 포인트 대비해야

한국농업은 불황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편적으로 보면 급격히 쪼그라들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농림어업총조사에서 농가수는 35년간 절반이 줄었다. 100만 농가가 농사를 짓지 못하거나 경영상의 이유로 폐업을 한 것이다. 농민 인구는 더 심각하다. 같은 기간 농민들은 100명 중 76명이 농촌을 떠났다.

그나마 남은 농민들의 40%가 65세 이상으로 고령화 또한 심각하다. 우리나라 전체 산업 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불과 25년만에 1/4로 축소됐다. 그동안 정부가 농업을 살리기 위해 쏟아부은 예산만 수 십 조원. 투입한 예산과 비교해 너무나 초라한 성적표다. 앞에서 설명한 시장개방의 여파는 농업의 구조조정에 불을 지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UR 이후 농업생산은 연간 7875억 원이 감소했다. 어림잡아 20년간 15조원에 달하는 수치다. 실질 농가소득 연평균 증가율도 UR 이전 6.4%에서 UR 이후 0.6%로 1/10 수준으로 감소하면서 농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더 나빠졌다. 정부는 농촌의 체질을 변화시키고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지만 지금 우리나라 농업의 모습은 실로 참담하다.

앞으로의 농촌은 어떤 모습일까. 국제 무역질서가 변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시장개방은 피해갈 수 없는 수순이다. WTO 체제, 나아가 DDA 체제에서는 농업보조금도 축소될 것으로 예상 되는 바 농업은 더욱 구조조정의 여파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정부가 시장개방을 할 때마다 10년 혹은 15년의 점진적인 관세율 축소로 농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포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점진적인 관세철폐는 당장의 피해는 없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폐업을 하게 되고 또 농가스스로 폐업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농가가 농가를 밟고 일어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시장개방이 불가피하다면 정부는 막대한 재정을 풀어 농가들의 구조조정을 돕고 농민 복지정책을 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점진적인 관세 철폐를 두고 한 농업전문가는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표현을 했다. 시장개방이 가속화되고 언젠가 농업의 티핑포인트(Tipping point)가 왔을 때 한순간에 농업이 무너질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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